본문 바로가기
너구리뷰: TV

<부부의 세계> 김희애의 힘, 이토록 우아한 '사랑과 전쟁'

by sweetheareafter 2020. 4. 4.

 

 

 

 자가격리의 시대, 드라마 정주행만큼 흥미진진한 일이 또 있을까.  요즘 빠진 드라마는 <부부의 세계>다. <비밀의 숲> <시그널> 이후로, 한 주가 기다려지게 하는 드라마가 드디어 생겼다. 관심없어 하던 남편도 2화까지 보고나니, 3화는 언제 나오냐고 성화다. 국내 드라마로는 보기 드물게 19금 딱지가 붙은 드라마이지만, 그 정도로 선정적이지는 않다. 섹슈얼함의 수위보다 '불륜'이라는 윤리적 문제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 자신을 대단히 개선하기 위해서 이렇게 사는 건 아니다. 그냥 하다보니 삶이 행복해지는 걸 깨달았다. 정해진 대로 할 일을 하는 게 지루할 것 같겠지만, 막상 하는 사람은 정말 재밌다. 정신 건강에 좋은 것 같다. 맥 놓고 있는 것보다 머리도 개운하고."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4194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한 건 순전히 김희애 배우 때문이었다. 하희라 ,신애라, 김희애의 시대를 목격한 80년대생으로서 ,부부의 관계>를 보면서 대체 저 배우가 이토록 롱런하는 저력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생각했다. 1986년부터 2020년까지 지 ,그 사이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도 꾸준히 브라운관을 통해 질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는 비결은 무엇일까. 

 

드라마에서 그치지 않고 어느날 예능(*꽃보다 누나)에 나와 범상치 않은 포스를 뿜어냈다. 예능에 이어 드라마 <밀회>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며 단숨에 전성기 오브 전성기를 맞은 김희애 배우는 연기력 뿐 아니라 유행어 (이건 특급 칭찬이야) 까지 만들어 낸다. 많은 예능인들이 가볍게 패러디를 한 대사이지만, 사실 김희애 배우의 어마어마한 대사전달력을 증명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부부의 관계에서는 어떤 명대사를 남길지도 기대된다!!)

 

 

 

"전 결혼한 배우이지만 누구의 어머니나 이모 역할은 잘 맡지 않고 한 사람의 주체로 혹은 사회적 파장이 있는 역할을 많이 맡았었던 것 같아요. 이번에도 처음보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하고 싶고 욕심이 났죠. 그만큼 힘들었어요. 사투리는 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운동선수가 본인 경기를 계속 보면서 단점을 고쳐 나가듯이 저 역시 제 사투리를 녹음해서 듣고 다니면서 계속 연습했어요. 사실 제가 목소리가 좀 작고 약해요. 문정숙을 하려면 그런 것들을 다 벗어던지는 노력이 필요했어요."
https://www.nocutnews.co.kr/news/4987290

 

 

 

 

 

 작품 고르는 눈도 범상치 않다. 최근 필모그래피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단연, 위안부 할머니들의 관부재판의 변호사를 연기한 <허스토리>와 40대의 여성로맨스를 그린 <윤희에게>다. 둘 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메세지, 그러나 제대로 드러나지 못했던 목소리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윤희에게>에서 화장기 없는 얼굴로 점퍼를 입고, 급식소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기 위해 봉고차에 몸을 싣는 장면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상처와 아픔을 가지고도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결코 처량하고 초라하게 표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과장해서 씩씩하게 묘사하지도 않았다.  그 때 그녀가 보여준 것은 '생계의 우아함'이었다. 

 

 

 

 어떤 씬이든 김희애가 나오면 우아해진다. <내 남자의 여자>에서 불륜을 들키고 하유미에게 머리채를 뜯길 때조차 김희애는 우아했다. 불륜을 정당화하지도 않고 숨기지도 않고 당당했고 사랑이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마지막까지 격조 있었다. 물론 드라마라 가능한 판타지겠지만, 어쨌든 '사랑과 전쟁'의 통속성을 벗어나는 능력을 지녔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녀라면  '사랑과 전쟁' 도 품격있어 보이게 만들지 않을까. 이것이 김희애가 반복해서 불륜과 관련된 캐릭터를 맡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번도 같은 연기를 한 적은 없었다. 

 

 

 

물론 '불륜'이라는 소재를 세련되게 연출하는 것은 배우 뿐 아니라 연출과 작가의 몫도 크다. <부부의 세계> 1화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1화가 끝나자마자 나는 소리쳤다. '어떻게 미니시리즈 1화를 마지막회에 치달은 회차처럼 만들 수 있지!!!'  불륜이 밝혀지는 방식도 신선하다. 남편이 자신을 속였다는 사실만큼이나 큰 배신감을 안겨주는 설정이 이 드라마에 더 빠지게 만드는 요인이다. 각각의 인물들이 어떤 욕망을 숨기고 있으며 어떤 관계로 얽히고 섥히게 될 지 호기심을 강렬하게 자극한다. 김희애 배우가 '여성 서사'를 이끌어가는 데 강점이 있는 만큼 민현서와의 관계도 어떻게 진행될 지 궁금하다.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에게 하는 대사는 정말 사이다였다) 

 

 

내 말 한마디면 '인생 끝 나 ,너.....' 

 

 

 

부부의 세계 원작은 영국드라마 <닥터포스터>라고 한다. 매주 기다리기 지칠 때쯤 , 원작 영드를 보면 좋을 것 같다. 원작을 어떻게 리메이크했는지 비교하면서 보는 것도 꽤 흥미진진하지 않을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