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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구리뷰: 영화

<하이에나> 정금자가 좋은 이유, '선'善보다 '일잘러'

by sweetheareafter 2020. 4. 5.

드라마의 인기는 주인공이 좌우한다.

연기력도 연기력이지만, 캐릭터 자체가 대중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가는지 중요하다. 얼굴 잘생긴 배우는 많아도 연기 잘하는 배우는 몇 없듯이, 연기 잘하는 배우는 많아도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나는 배우는 드물다.  주인공의 매력은 선한 것과는 관련이 없다. 그렇다고 밑도 끝도 없이 악 하기만 해도 안 된다- 그것은 주인공을 빛나게 해 주는 빌런의 역할이다.

 

착해서도 나빠서도 안 된다면, 어째야 한다는 말일까. 

 

 

 

미국 드라마를 리메이크 해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 <지정생존자>.

 

지진희 배우를 너무 좋아해서 기대했던 드라마였다. 청와대에서 테러 폭발이 일어나는 1회는 긴장감이 넘쳤다. 지진희 배우가 연기한 '박무진'이 대통령 권한 대행을 맡은 후 정치 갈등이 흥미진진했는데, 중간쯤 보다가 말았다. 정치적 감각과 신념이 없는 사람이 얼떨결에 권력을 얻게 되어 국정 혼란을 수습해 가는 게 이 드라마의 포인트인 건 알겠는데 바로 그 점에서 흥미를 잃었던 것. 

 

 현실에서라면  정치적 야망에 흔들리지 않고, 과학적인 이성과 지성을 갖춘 도덕적 인물을 지지하겠지만, 드라마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가 보고 싶은 정치드라마는 '하우스 오브 카드' 같이 온갖 욕망이 뒤섞인 가운데 선과 악이 엎치락뒤치락하는 드라마였지 , '정치에 대해 난 모르오, 내가 중요한 것은 이 땅의 평화와 질서!'  선비 같은 정치인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아니다.  그렇다면 정의롭고 선한 인물이 매력적이려면 어떤 요소를 갖춰야 할까. 

 

 

 

  <비밀의 숲>에서 조승우가 맡았던 '황시목' 캐릭터가 문득 생각난다.

 

 황시목 검사는 어렸을 때 뇌 수술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우뇌 손상으로 희로애락을 제대로 느낄 수 없지만, 좌뇌의 이성만큼은 더 냉철히 진화한 인물이다.  황시목에겐 당연히 '정의감'도 희미하다. '내가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자각 없이 정의를 실현하는 것만큼 매력적인 게 또 있을까. 그에게는 '내 손으로 반드시 살해당한 피해자의 억울함을 밝히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다'는 직업적 자의식이 없다. 이 '뇌 설정' 때문에 드라마의 검사 변호사, 의사, 정치인이 흔히 택하는 카타르시스적 영웅 서사를 교묘하게 비껴간다. 

 

 분노뿐 아니라  '연민'이나 '공감'의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황시목은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프로답게, 철두철미하게, 올바르게 할 뿐이다. 물론 이 또한 현실에서 보면.. 너무 무섭겠지만.. 드라마 속에서는 그 설정이 주인공과 스토리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매력적인 캐릭터가 여기 또 있다. 하이에나의 '정금자'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 때문에 엄마를 잃었고 자신도 죽을 뻔했다. '힘'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해 변호사가 되었다. 그 힘은 바로 법과 돈이다. 창고 같은 사무실에서 대형 로펌으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본격적으로 재력을 얻게 된 정금자는, 억울하게 피해받은 사람들에게 길고 지난한 싸움을 하느니 막대한 위로금을 챙겨서 그걸로 자식들 공부시키고 권력을 가지게 해 그때 복수하라고 한다. 본인이 그랬던 것처럼. 시궁창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정금자는 부단히 돈을 좇는다. 사랑의 감정도 이용하고, 필요할 때는 배알도 없는 사람처럼 바짝 엎드려 가면서.

 정금자가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해 사회적 약자를 무료로 변호해주는 일을 하는 드라마로 흘러간다면 '하이에나'가 '하이에나'일 수 없었을 것이다. 정의 실현에 앞서 생존을 향한 강한 욕망, '나는 선하다 , 정의롭다'는 자각 없이  그 가치를 실현시키는 '일잘러'의 캐릭터. 주인공의 매력은 거기에서 탄생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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